디아스포라와 신학
디아스포라에게도 신학이 있을까? 아니 하나님의 디아스포라로 세계 곳곳으로 흩어짐을 당하였다는 경험 자체가 신학의 전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신학적 내용은 무었이며, 전통적인 신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학’이란 단어가 단순하지도 또는 순진하지도 않은 용어임을 안다. 이민이란 단어와 비슷하게 신학도 누가하느냐, 어느 교단이 하느냐, 누구를 위해 하느냐, 어디서 하는냐, 언제 하느냐, 왜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신학도 여러 이민자들이 다양한 장소에서 경험하는 신앙의 표현이므로 복합적으로 드러 날 수 밖에 없다.
신학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관한 체계적인 학문이고 그 연구과정이라고 한다면, 디아스포라신학은 디아스포라 과정에서 경험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표현하는 훈련이라 할 수 있다. 예수는 우리 이민자에게 누구이신가? 살아계신 하나님이 현재 디아스포라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사를 하고 계실까? 여러민족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인가? 그 중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고침과 구원이 필요한가? 우리는 얼마만큼 한국문화성을 유지해야 하고 또 얼마만큼 세계인이 되어야 하는가? 복음과 문화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디아스포라신학은 ‘다차원적이고, 다중심적이고, 그리고 다언어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응답하는 훈련이다.
백 사십여개의 민족들이 디아스포라가 되어 호주 땅에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성읍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또 여호와께 기도할 수 있을까? 단순히 복지적이나 선교확장적인 차원을 넘어 실존적이고 신앙적인 축복을 줄 수 있을때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곳에서 부터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데, 신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예를들면 우리는 월남, 중국, 이탈리아 등의 식당을 즐겨가는데, 영적으로 실존적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하나님의 형상을 확인해 주고 있으며, 그들을 통해 우리는 어떤 고침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다문화 호주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디아스포라 신학은 말할 수 있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민신학은 다문화신학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민목회는 다문화목회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다문화라고 하면 보통 영어로 ‘multicultural’로 표기되는데 이 영어단어는 호주사회 안에서 여러 정치적인 논쟁과 더불어 부정적이고 분열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문화 목회’하면 많은 호주교인들이 일단 거부감부터 보이는데 이것을 지향할 수 있는 단어가 ‘cross-cultural’이다. 이 단어는 다문화 혹은 초문화로 번역되는데 cross-cultural theology (다문화신학)나 cross-cultural ministry(다문화목회)는 이민을 오는 자들과 받는 자들이 함께 공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내용이다.
특히 ‘Cross’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며, 예수의 십자가는 고난, 오해, 배신, 희생, 사랑, 죽음, 희망등의 이민자들이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cross’의 또 다른 뜻은 교차로로 문화와 문화가 만나 다 민족적 활동과 도전이 있고, 개인과 집단이 회심을 경험하고 있는 곳이다. ‘cross’는 또한 화가 났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이 있으므로 그런 부정의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뜻으로도 말하여질 수 있다.
그러므로 다문화신학은 디아스포라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목회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신학작업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Copyright 양명득
디아스포라와 교회당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호주에서도 집을 사려면 꼭 보아야 할 조건이 있다. 로케이션 (location), 로케이션, 로케이션이다. 같은 종류의 집이라도 집이 서 있는 지역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서 사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지고, 정체성도 바뀐다.
해외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은 본인이 자발적으로 찾은 지역이던, 아니면 등 떠밀려 흘러들어 온 지역이던 그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게 된다. 전에는 의미없었던 시드니의 한 공간이 이곳으로 이민을 온 후로부터 갑자기 나의 가족과 신앙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여 왔다. 고향을 떠나 약속의 그 장소로 향하는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그 중에서도 유대지역으로 오신 예수님 까지, 장소와 지역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의 성취가 동반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서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러주신 특별한 공간에서 우리는 집을 만들고 교회당을 세운다. 이 지역과 장소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었일까? 집을 사서 소유하는 것은 대부분 이민자들의 꿈이지만, 그곳에서 교회당을 세우는 것은 디아스포라의 공동체적인 행위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호주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한인목회자들의 큰 고민 중의 하나가 교회당을 찾는 일이다. 교회당을 사거나 건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상황이 그렇치 못하다. 호주교회를 빌려 사용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어떤 호주교회는 말 그대로 ‘세입자와 집주인’의 취급을 하고, 어떤 호주교회는 ‘손님과 주인’의 관계를 원하고, 어쩌다 ‘파트너 쉽의 동등한 위치’를 세워가는 호주교회도 있다.
시드니의 위치 좋은 한 지역의 호주교회를 빌려 몇 년동안 예배를 드려 온 한인교회가 있는데, 최근 호주교회 목회자가 바뀌면서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급기야는 호주교회에서 그 한인교회에게 나가 달라는 통첩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문제는 그 호주교회와 한인교회는 둘 다 호주연합교회 소속의 교회들인데,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호주교인들에게 물론 그 교회당의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본인의 선조들이 그 교회당을 세웠고, 그곳에서 세례, 결혼, 장례식까지 다 치루다 보니 그들 삶의 한 부분이다.
반면에 한인교인들에게는 그 교회당의 공간이 왜 중요할까? 먼 곳까지 이민 와 단을 세우며 예배를 드리는 영적인 처소이며, 눈물로 기도와 찬양할 수 있는 그발 강가 같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의미없는 광야 벌판이 아니라 원주민이나 이민자들이 함께 나누어야 할 공간이요 처소이다.
얼마전 필자는 디아스포라교회의 헌당예배 두 곳에 참석하였다. 한곳에서는 설교자가 ‘이 아름다운 교회당은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므로 이곳을 들어 오고 나가는자는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였다. 그런데 다른 교회 헌당예배의 설교가 문제였다. 이것은 교회가 아니란다. ‘얼마나 아름답게 지었던간에 이곳에 머물지 말고 세상으로 나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이루라’는 것이었다. 이국 땅에서 몇 년동안 고생하며 교회당 건축을 한 교인들에게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정말 디아스포라들에게 참 교회는 무었일까? 어차피 집을 떠나 온 사람들인데, 순례의 여정에 서 있는 사람들인데, 무리하게 빚을 지면서라도 교회당을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든지 모자를 벗는 곳이 나의 집’이라는 노랫말 처럼, ‘어디든지 무릎 꿇는 곳이면 교회’가 아닐까? 기름냄새나는 창고건물이라도, 하늘이 보이는 공원이라도, 세들어 사는 남루한 응접실이라도 믿는자들이 모이면 그곳이 바로 ‘홀리 스페이스’(신성한 공간)가 아닐까? 하나님이 디아스포라들에게는 모이는 교회보다 특별히 흩어지는 교회의 사명을 주셨을찐데 말이다.
디아스포라와 모국교회
디아스포라와 모국교회
호주 텔레비젼 프로그램 중 ‘홈 앤 어웨이’ (집과 집을 떠나서)란 연속극이 있다. 집안과 집 밖에서 일어나는 연속의 사건을 드라마화 한 내용이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에게는 어느 곳이 집이고, 그 집을 떠나서는 또 어디일까? 호주에 오래 살면서 종종 받는 질문 중 ‘Where is your home?’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이 있다. 집 주소를 알고싶은 질문이 아닐찐데 우리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집은 어디인가? 한국에 있을까 호주에 있을까 아니면 중간쯤? 어떤 때는 둘 다 집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좋은 관계가 있는 곳이 집이라고 했지만 썩 만족스런 대답은 아니었다.
요즘에는 ‘영원한 집은 없고 home moment (집이라고 여겨지는 순간)만 있다’고 즐겨 대답한다. 식구들이 사는 가정에서도 때로 집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고, 낮선 곳 이방인들과의 만남에서도 따뜻한 가정의 느낌을 갖을 때가 있다. 그래서 영원한 집은 없고, 집 혹은 고향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귀히 여긴다.
디아스포라가 되어 해외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교회를 세워나가면서 비슷한 질문을 한다. 우리에게 본 교단은 어디인가? 한국에서 다니던 그 교단인가 아니면 이곳 호주의 교단에 속해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에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가? 호주의 한인교회들이 교단에 속하는 유형을 보면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한국의 교단을 그대로 이어 한국교단의 노회나 지방회가 되는 방법, 호주의 교단에 속하여 호주노회 소속 교회가 되는 방법, 아니면 몇 교회가 독자적으로 대양주의 총회를 만들어 속하는 방법, 최근에는 미주의 한 교단에 속하여 호주노회 형식으로 소속하는 방법등 다양하다.
교회와 목회자의 인간관계, 신학, 선교비젼, 정체성 등에 따라 여러 모습의 교단성을 가지는데, 어떤 형태의 교단이던 장단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고향을 떠난 디아스포라로서 하나님의 선교와 나라를 위해 어떤 교회와 교단의 모습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절할까 하는 질문이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자리가 바뀌었는데 여전히 모국교회에 속해야 하는지, 언어도 불편하고 선교내용도 같지 않는 호주교회에 속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한국에도 없고 호주에도 없는 독자적인 교단을 만들어야 하는지 말이다. 이런 교단의 패턴에 따라 지방회 회장에서 노회장 그리고 총회장까지 생겨나는 시국이고, 그리고 이것은 물론 한국교단들의 해외교회 정책과 밀접한 관계와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호주연합교회 안에 있는 한인교회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주로 한국의 예장통합, 감리교 그리고 기장에서 온 목회자들이 많이 있고, 합동측과 고신측 목회자도 함께하는 말 그대로 ‘유나이팅’ (연합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들은 호주연합교단 안에서 각 지역에 있는 호주노회의 행정하에 한인목회를 해왔다. 그러나 십 몇년전부터 한인목회자들 중 호주노회에 속해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는데, 언어문제를 포함하여 교회행정과 선교의 내용의 차이점에서 비롯되었다. 자매교단간의 선교정신에 따라 호주연합교회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한인노회를 만들어 한인교회만의 독특한 목회적이고 선교적인 필요성을 돕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이다. 그 후 10여 년의 토론과정을 거쳐 결국 지난 2011년 NSW주 총회의 동의 속에 한인노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주총회나 소속 한인교회들은 노회의 역할과 사역을 발전시켜 나가며 앞으로의 목회와 선교를 구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인노회는 호주노회들에게도 새로움을 주어 전체 교단이 지속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도전을 주고 있다. 노회 모임과 회의록을 이중언어로 진행하거나 기록하여 누구나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한 예이다. 디아스포라 목회는 2세들을 위해서도 필연적으로 다 언어적이고, 다 상황적일 수 밖에 없다.
디아스포라의 교단관계는 모국교회와 호주교회 사이에서의 양자택일 질문이 아니라, ‘홈 앤 어웨이’의 유동적 관계속에서 가장 우선적인 하나님의 선교와 나라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디아스포라 목회는 이렇게 다양한 세대의 구원의 필요와 상처의 치유를 도울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대간의 열린 대화와 배려가 필수적이다.
디아스포라와 원주민
디아스포라의 여정은 우리에게 많은 사람과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한다. 그중에 멀리할 수 없는 만남이지만 피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땅의 원주민들이다.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들이 사는 곳에 오래동안 살아 온 원주민들이 있는데 그들과의 관계는 무관심내지는 적대적인 상황이다.
디아스포라와 후세목회
언젠가 시드니의 어느 교회 2세 모임의 예배를 정기적으로 인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2세 리더 중 필자의 한국이름이 부르기 어려우니 영어 이름을 달라는 것이다. 격의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며 교제하자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맞먹자(?)는 이야기였다. 필자는 너무 좋아 기쁜마음으로 생소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호주에서 영어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취업시 면접에 초청될 확율이 낮다고 하는데도, 끝까지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고수해 왔던 그 자존심이 2세들의 요구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편안해하는 이름으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2세들과의 문화코드였다. 아무리 유창한 영어로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여도 필자가 가지고 있는 1세 한국문화와 그들의 젊은 호주문화 사이에 막힌 담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후 필자는 그 예배인도를 다른 이에게 조용히 물려 주었다. 실패했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호주에서의 2세 목회는 아직 초기단계이지만 점차로 주목을 받으며 몇 큰 교회들이 영어예배와 2세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가 2세들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현지에서 훈련받은 사역자가 많치 않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주로 미국에서 2세 사역자를 청빙하여 사역을 개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 얼마 안가서 교회를 사임하거나 본국으로 돌아 가는데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1세 지도와의 갈등, 교회의 지원 부족, 과다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호주문화에 대한 이해부족 등이 그 원인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번은 시드니의 한 한인교회가 2세 사역자를 청빙하려 미국의 한 목사님을 인터뷰하였다. 그 목사님은 뜻밖에 청바지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인터뷰 후에 2세들은 그 목사님의 생각과 비젼을 좋게 여기어 청빙하려고 하였고, 1세 위원들 중에는 청바지를 포함한 그 목사님의 태도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목사님은 청빙되어 사역을 하게 되는데, 긴 시간 지나지 않아 결국 사임을 하고 미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1세들과 2세들의 엇갈린 기대와 문화가 결국 2세 목회자의 사역을 어렵게 한 경우이다.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꿈중의 하나가 자녀들의 성공이다. 요셉과 다니엘 같은 그리고 에스더 같은 신앙의 후세들로 성장하여 한편으로는 현지에서 교육받아 거주하는 나라에 공헌하며,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며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성공말이다. 그리고 이런 꿈들을 이루는 우리의 후세들이 세계 곳곳에 얼마든지 많이 있다. 부모들의 기도와 자녀들의 노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호주에서의 세대관계는 복합적이지만 크게 네가지 유형의 세대로 나눌 수 있다.
1) 호주속의 한국인(Koreans in Australia)은 소위 ‘화분채 옮겨 놓은’ 개척 1세 이민자들과, 노년에 자녀따라 이민 온 0.5세대들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지리적 환경만 호주일 뿐이지 한국인으로 한국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2) 한국계 호주인(Korean-Australian)은 ‘화분이 깨져 호주 땅에 뿌리를 내리는’ 모습으로 일부 1세나 1.5세, 그리고 2세까지 속하는데 이들은 한국과 호주를 연결하는 다리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다. 3) 또한 스스로를 호주인으로만 여기는 한국인(Australian Full Stop)도 있다. ‘호주땅에 씨가 뿌려져 싹이 튼’ 한국적 유산을 잃어버린 많은 2세나, 의도적으로 한국 문화를 멀리하는 1세나 1.5세도 여기에 속할 수 있다. 4) 네번째로 다문화 호주사회의 주변인(‘AustrAlien’, Australia와 Alien의 합성어로 호주속의 이방인을 지칭함)으로 ‘어느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다니는 씨앗’이다. 이 그룹도 1세, 1.5세, 2세들 중에서 다 나타나고 있는데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변두인들이다.
디아스포라와 원주민
디아스포라의 여정은 우리에게 많은 사람과 새로운 이웃을 만나게 한다. 그중에 멀리할 수 없는 만남이지만 피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그 땅의 원주민들이다.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들이 사는 곳에 오래동안 살아 온 원주민들이 있는데 그들과의 관계는 무관심내지는 적대적인 상황이다.
호주의 한인이민자와 교회들도 백인들과의 사이나 다른 종족들과의 다문화 관계는 돈독히 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지만, 애보리진이라 불리는 원주민들과는 왕래가 거의 없던지 아니면 선교의 대상으로만 여겨 온 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원주민들도 우리같은 디아스포라에게 큰 관심이 없다. 그들의 주된 잇슈가 호주백인들과의 관계에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문화정책’이 이민자들에게는 공감과 동기를 주는 정책이지만, 많은 원주민들은 그 정책을 자기들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내용으로 의심스럽거나 부정적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선교국 사무실에 펄 위마라는 원주민 동역자가 있다. 이 분은 그동안 만난 원주민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의 외가쪽 할머니 할아버지는 ‘빼았긴 세대’로 인하여 고난을 받았는데, 펄은 우리 이민자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도둑맞은 세대 (Stolen Generation)’ 혹은 ‘빼았긴 세대’란 1910년대 부터 1970년까지 호주전역에서 시행된 원주민 동화정책이다.
필자가 지난 10년간 진행해 오는 다문화 관계 웍샾에 펄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원주민 시각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무서운 비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감사하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민도 없지 않다. 그녀는 한번 말을 시작하면 10분이고 20분이고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필자는 워크숖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끼어들어야 하는 곤혹스러움도 여러차례 있었다. 그만큼 펄은 원주민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말도 많고, 쌓인것 도 많고, 그리고 상처도 깊은 것이다. 본인의 아픈 이야기로, 눈물의 이야기로 그녀는 우리를 조금씩 조금씩 감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펄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백인들이 우리들의 가정을 분리시키고, 또 다시 가족을 찾을 수 없도록 성까지도 다 바꾸었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 기록에 성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문서문화가 아니고 구전문화이다. 전해지는 이야기 이야기들을 통해서 헤어진 우리의 가족들을 계속 찾을 것이고, 결국 우리의 땅도 찾을 것이다.”
펄의 고향은 호주대륙 최북부에 있는 서스데이 섬이다. 그 섬은 우리 한인이민자들과도 관련이 깊다. 1921년 호주에 도착한 최초 유학생 김호열 교사도 그 섬을 통하여 입국하였기 때문이다. 펄은 언젠가 나를 그 섬에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디아스포라의 여정중 여러 만남이 있지만 그 땅의 원주민과의 관계는 꼭 형성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호주의 과거역사만 논한다면 그 후에 온 우리 이민자들의 역할은 없을 지 모르지만, 현재와 미래를 생각한다면 우리 이민자도, 원주민도, 그리고 백인들도 모두 호주인이기에 함께 화해하고 공유해야 한다.
작년에 호주역사에 기록되는 큰 순간이 있었다. 새 정부 노동당이 들어 옴에 따라 케빈 러드 수상은 선거공약대로 ‘빼았긴 세대’와 그 자손,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통에 대해 ‘We are sorry’라고 공식 사과한다. 과거의 오점을 인정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 앞으로 모든 후손들이 함께 살아가는 국가를 건설할 미래지향적인 사건이었고, 많은 호주인과 원주민들이 그 장면을 보며 눈물지었다. 어느 신문기자의 말대로 정말 호주 백호주의의 마지막 잔재가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호주연합교회 총회는 이미 1985년 과거사에 대하여 원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하였고, 원주민 교회들이 스스로 목회와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전국원주민협의회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몇년 전인가 호주연합교회의 한인준노회는 퀸즈랜드에 소재한 원주민협의회 사무실과 신학교를 방문하여 관계형성을 도모하였다. 하나님께서 디아스포라교회에게 주신 화해의 사명, 포기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림설명: 호주 시드니 소수민족선교원에서 1989년 발행한 계간지로 장산 스님의 그림이다.>
<그림설명: 호주 시드니 소수민족선교원에서 1989년 발행한 계간지로 장산 스님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