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선교사와 북한선교
죤 브라운 박사
2003년 말 호주연합교회는 북한의 함경북도 제일 북단에 있는 한 시에서 조그만 보육원과 구제 사업을 하던 그리스도교 소속의 한국계 미국인 목사로부터 도와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는 그곳 지방정부로부터 고아원을 세우도록 초청을 받고 있었던 차였다. 멜본한인교회 지도자들과 나는 그를 만나 깊은 토론을 하였고, 우리는 결국 그 초청에 응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호주연합교회의 세계선교부와 상의하고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하기로 합의하였고, 멜본한인교회의 한 부부가 이 일을 위하여 북한으로 파송되었다. 그 이후 한 부부가 더 파송을 받아 현재 함께 사역하고 있다.
북한은 종교적인 활동이나 종교적인 단체를 제한하고 있다. 정부가 허락하는 평양시의 두세 개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그 곳에 교회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기독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인도적인 단체로 일을 하고 있다. 그곳 관리들은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전도나 예배를 하지 않는 한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북한의 그 시에 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연길까지 비행하여 우리의 사역자들이 사는 훈춘까지 자동차로 간다. 사역자들은 두만강을 넘어 북한에 들어 가 그 시의 한 호텔에 머물다 다시 훈춘으로 돌아온다. 두만강을 건널 때 북쪽에는 중국세관이 있고, 강을 건너면 북한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에서도 거주할 수 있지만 생필품들을 중국에서 들여와야 하고, 그곳 관리들에게 어려움을 줄 수 있어 사역자들은 중국에 거주한다.
북한에서의 첫 번째 사역은 보육원을 계획하고 세우는 일로 그곳 시정부와 협력하여 하는 일이었다. 시 정부는 땅을 제공하였고, 호주와 미국 그리고 한국의 친구들이 건축을 위한 제정을 후원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도 보육원 건축을 위하여 큰 후원을 하였다. 보육원은 시에서 약 2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어린이 대부분이 고아들이고 나머지는 여러 이유로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이다.
일의 방법 차이로 북한의 관계된 시 관계자들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인내와 끈기로 우리 사역자들은 그들과 신뢰를 쌓으며 일을 만들어 왔다. 시 정부가 임명한 일꾼들에 의하여 현재 어린이들이 돌봄을 잘 받고 있고, 음식, 옷, 그리고 다른 필요한 것들은 미국과 호주의 후원자들에 의하여 제공을 받고 있다. 우리 사역자들은 명절 등에 특별한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따뜻하고 건강하게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시에 있는 한 학교에 다니는데 거리와 기후로 인하여 어린이들의 등하교를 돕도록 겨울에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첫 어린이들이 보육원에 들어 온 이후로 건강검진이 실시되었는데, 어린이들 사이에 결핵이 퍼지고 있었고 60%이상이 감염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치료가 시급하였다. 심각한 아이들을 근처 결핵병원으로 데리고 갔지만, 그곳 시설이 낙후되고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새 엑스레이 기계와 전기공급을 위한 발전기를 지원하였는데 중국에서 트럭으로 들여왔다.
서양에서는 북한의 군사적인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많이 접한다. 그러나 수백만의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생존하는 것이 전부다. 결핵병원 여 원장은 수년간 환자들을 위하여 그녀의 건강을 희생하며 일해 왔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한 연민의 마음이 넘쳐났다. 병원의 시설이 너무 낙후하여 우리는 새 결핵병원을 세우기로 관계자들과 합의 하였다. 2010년 마침내 새 병원이 세워졌고, 그곳 시와 인근주민들이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교통편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지역주민들이 필요할 때마다 병원을 쉽게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자들은 이동병원 시설이 필요함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201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다시 한 번 후원하여 중국에서 차를 구입하여 디지털 엑스레이 도구와 발전기를 장착하였다. 현재 이 이동병원 차는 그곳 지역을 순회하며 주민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성장하는 고아들과 지역 젊은이들을 위하여 컴퓨터 기술을 가르쳐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왔는데,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우리 사역자들은 컴퓨터기술학교를 세워 운영하였다.
사역자들은 훈련받은 간호사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 보건부 관계자들과 간호학교 세우는 것을 상의하였다. 이 학교도 2011년 말에 완공되었고, 첫 후보생들이 현재 훈련을 받고 있다.
이 모든 프로젝트는 지역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과 그들의 협력 속에 진행되었다. 세상의 어느 나라도 자국의 국민들이 헐벗고 배고픈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지역 정부관계자들과 우리 사역자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우리 팀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제 식량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사역자들은 중국 훈춘에 살며 매 주 일하가 위하여 북한의 그 시를 방문한다. 그러나 중국에 장기 체류비자를 계속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에서 사업체를 시작하여 비자를 확보하고, 북한 사역을 계속할 필요가 생겼다.
사역자들이 살고 있는 훈춘 시에서 가장 적절한 사업으로 한 건물을 구입하여 1층에 제과점과 커피숖을 열고 2층에는 영어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을 하였다. 건물구입과 시설구비 비용은 모두 육십 만 불이다. 재정모금을 위하여 주로 멜본의 후원자들이 많은 수고를 하였고, 다른 곳의 후원그룹들도 많은 재정을 지원하였다.
이름을 다 밝힐 수는 없지만 본 사역은 멜본에 거주하는 열정적이고 신앙이 깊은 그룹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리고 호주의 다른 그룹과 친구들도 또한 공헌하였다. 보육원 운영의 반 정도 지원은 미국의 친구들이 해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두 번에 거쳐 큰 지원을 하였고, 한국의 다른 친구들과 그룹들도 관대하게 지원해 왔다.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을 위하여 멜본의 헌신된 그룹이 재정모금을 해왔다. 별빛재단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호주 빅토리아 주정부에 자선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이 단체의 역할은 모금과 정보를 나누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과 호주의 여러 단체에서 협력하므로 작년에 별빛재단에 북동아시아 프로그램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프로그램을 관리 감독하는 책임을 맡기었다. 이 위원회는 별빛재단, 예장총회, 호주연합교회 총회, 그리고 관심 있는 몇 교회와 다수의 개인들이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일 년에 두 번 한국과 호주에서 각각 모인다. 북한 사역자들은 이 위원회에 보고하고, 이 프로그램에 관하여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 한께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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