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뉴질랜드 한인 역사
양명득
뉴질랜드에서는 뉴질랜드 한인사 발간위원회 (위원장: 한일수 박사)의 연구성과를 먼저 말할 수 있다. ‘아오테로아에서 한인들이 살아 온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뉴질랜드 한인사는 2007년에 출판되었다. 뉴질랜드 한인사 발간위원회의 4년간의 노력으로 이야기 형식으로 출간된 본 한인사는 이 방면 연구에 유일한 자료로 남고 있다. 본 한인사는 다음과 같은 목차를 담고 있다.
1) 북반부로부터 뉴질랜드로 이주가 시작된 지 170여 년
2) 한국전쟁으로 맺어진 한국과 뉴질랜드의 인연
3) 1970년 이전의 한인 사회
4) 1970년대에 한인 사회가 태동하다
5) 뉴질랜드가 이민 문호를 개방하여 한인사회가 성장하다
6) 일반 이민 제도 시행으로 한인 사회가 도약하다
7) 한국의 IMF 사태로 인한 시련 중에도 희망을 펼치다
8) 뉴질랜드에서 한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9) 뉴질랜드 한인들의 현주소
10) 뉴질랜드 한인 사회의 미래
초기 뉴질랜드 한인사를 기록한 학자는 김영성 교수이다. 그는 상명여대 지리학과 교수로 1994년 ‘뉴질랜드의 한국인’이란 논문을 월간해외동포 1994년 5월 호에 기고하였다. 이 글은 초기 한인들의 양적 성장과 한인사회의 전개과정을 1971년부터 주요 연표를 통하여 기록하고 있다. 윤홍기 교수와 임석회 교수가 함께 연구하여 발표한 ‘뉴질랜드 오클랜드지역 한국인의 생업분석’은 1997년 대한지리학회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뉴질랜드 이민 초기 한인들의 생업을 한인주소록을 분석하여 쓴 글로 당시 한인들의 생활을 엿 볼수 있는 자료이다. 윤홍기는 오클랜드대학교 지리학과 교수이며, 임석회는 오클랜드대학교 지리학과 박사후 과정 연구원을 지냈다
오클랜드대학 아시아학과 내의 한국학연구소는 1995년 개설되어, 격년마다 주최하는 ‘한국학을 위한 남태평양 아시아 컨퍼런스’도 주목할 만 하다. 한국학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이 본 컨퍼런스를 통하여 발표되어 왔고, 자료집까지 출판되므로 연구활동을 돕고 있다. 2010년에는 본 학과의 송창주 교수 주관으로 ‘Korean Studies in Shift’ (변화하는 한국학)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려 수명의 학자들이 논문을 발제 하였다.
뉴질랜드에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 올 수 있었던 계기는 1987년 뉴질랜드 정부의 이민법 개정을 통하여 시작된다. 뉴질랜드정부는 당시 호주정부처럼 아시아인 이민제한정책을 통하여 영국계 중심주의를 표방하여 오다가 1970년 대에 들어서 국가 안팎으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백인중심적 이민정책에 대한 변화 요구와 해외자본 유입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마침내 새 이민법이 1987년 공포되고 유색인종에게도 이민문호가 개방되게 된다. 이후 뉴질랜드는 원주민인 마오리와의 양문화정책 (bi-culturalism)에서 여러 인종을 아우르는 다문화정책 (multiculturalism)을 수용하고 있다.
한편 한국태생이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양적 성장을 하게 되는 내용을 앞에서 언급한 김영성 교수는 뉴질랜드 인구조사통계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911년 이전에 1명, 1931년 이전에 3명, 1945년 당시에는 4명, 1961년에는 52명 (이들 중 42명은 원양어선 선원으로 추측, 그러므로 거주자는 10명), 1966년에는 30명, 1976년에는 86명, 그리고 1986년에는 162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영성, 19). 이민법이 개정되기 전 한국인의 뉴질랜드 유입은 주로 취업, 결혼, 연수, 입양 등의 목적이었는데 초기에는 남태평양에 진출한 원양어선 선원들이 많이 입국하였고, 1950년대 부터는 콜롬보 플랜에 의하여 입국한 한국유학생이 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플랜에 의하여 공부하고 후에 뉴질랜드에 정착하여 동포사회 지도자가 된 우준기 박사와 한국으로 귀국하여 한-뉴질랜드협회를 결성하여 양 국간의 이해를 증진시킨 박영인 박사 등이 있다.
한국과 뉴질랜드 정부간의 관계는 1950년 한국전쟁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뉴질랜드군도 유엔군의 일환으로 한국전에 6천여 명이 참전하여 45명 전사하였고, 그 중 34명은 부산 유엔묘지에 안장되므로 견고한 혈맹국가가 되었다. 공식 외교관계는 1962년 수립되었고, 1971년 뉴질랜드 수도인 웰링턴에 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한인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오클랜드에는 1996년 대사관 분관 형식으로 공관이 개설되었다.
한국인 중 누가 언제 처음으로 시민권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1962년 6살로 입양된 김성미가 2년 후인 1964년 시민권을 받았다 (뉴질랜드한인사 발간위원회, 59). 뉴질랜드 한인회는 전체 교민의 수가 100명에도 못 미치던 1974년 당시 웰링턴의 뉴질랜드 대사 관저에서 창회되었으며 초대 회장에는 박사과정 중인 박흥섭 (후에 전남대 교수)이 선출되었다. 이 당시 태권도나 녹용 사업으로 이민 오는 동포들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뉴질랜드에서의 첫 교회도 웰링턴에 세워졌다. 원양어선 선원들을 위한 예배는 1960년 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교회로써의 창립은 웰링톤한인연합교회로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에 구세군 소속 군목으로 참전하였던 스미스 (Smith) 목사는 귀국한 후에도 한인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예배를 인도하였고, 1984년 3월11일 그동안 함께 준비해 온 장경립, 변경숙, 클락슨 가족, 김진영, 안경순 영사등과 함께 교회를 창립한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서 파송 된 김용환 목사가 그 뒤를 이어 목회를 하고, 김 목사는 후에 오클랜드 지역에 첫 한인교회를 창립한다.
1987년 이민법이 개정 되면서 투자이민제도가 실시되므로 1992년에 한인동포가 1,762명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고, 체류자가 978명, 원양어선 선원이 309명으로 총 3,049명의 한인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1992년 이 후의 한인 이민은 점수제에 의하여 1994년에 4,167명, 1995년 3,394명의 한인이 영주권을 받았으며, 유입된 전문직 사무직의 젊은 층의 인력들로 뉴질랜드 한인사회를 또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한국인들의 뉴질랜드 방문을 더욱 촉진시키는 기회는 1993년도에 왔다. 태극날개를 단 대한항공이 그 해11월4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첫 바퀴를 내린 것이다. 직항 취항은 양국간의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증대를 가져 왔고, 다음 해인 1994년에는 양국간 사증 면제협정 체결이 이루어짐으로 뉴질랜드에 입국하는 한국인의 수가 1995년에서 1997년까지는 연간 10만 명에서 13만 명에 이르렀다 (뉴질랜드한인사 발간위원회, 148-149).
한국과 뉴질랜드 사이의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관광취업) 비자협정은 1998년 체결되었고, 그 다음 해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 협정으로 인하여 양국간 젊은이들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매년 1,800여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뉴질랜드를 방문하며 문화와 경제 교류를 하고 있다.
2006년 인구조사에는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가 17,600명, 일반체류자가 5,400명, 유학생이 10,000명으로 총 33,000명 정도로 나타나 있고, 이 중 79%는 북섬에, 21%는 남섬에 분포되어 있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몇 개의 한인회가 주요 도시마다 세워져 있어 한인동포들의 정착을 돕고 있으며, 주류사회와의 연계와 모국과의 교류를 도모하고 있다. 아홉 개의 한인회는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다음의 도시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오클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웰링턴, 와이카토, 로토루아, 더니든, 황가레이, 파머스톤, 퀸즈타운 등이다.
뉴질랜드 사회에 진출하여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1세 동포 뒤를 이어 1.5세나 2세들도 점차로 주류사회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 중 윤용제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한인 최초로 2004년 지역 의원으로 출마하여 시의원이 되었다. 그는 2007년 선거에서 재선되기도 하며 지역 의정활동을 해 왔고, 크라이스처치 한인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TV 앵커 출신인 이지연 (영어명: 멜리사 리)이 뉴질랜드 총선에서 집권 국민당 비례대표로 나서 한국인 이민자로서 최초로 뉴질랜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는 한인동포 여성으로도 최초의 국회의원으로 기록되어 전 세계 한인 이민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최근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전체 뉴질랜드 인구의 거의 1%가 한국 동포이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중국, 인도 다음으로 뉴질랜드에서 큰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일인당 비율로 보았을 때, 뉴질랜드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한인 동포사회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중인 한국 학생수도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중국 다음으로 한국은 뉴질랜드의 큰 유학생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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