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무덤 앞에 꽃을 놓다(II)
-에이미 스키너(Amy Skinner)와 베시 무어(Bessie Moore) 무덤 방문기
양명득
#스프링베일에서
오후에 우리가 찾아간 두 번째 공동묘지는 스프링베일에 있었다.
버우드의 오래된 공동묘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밝고 현대적이었으며, 규모 또한 엄청났다. 오전처럼 일행이 서로 흩어져 묘비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다행히 관리사무소의 문이 열려있었다.
우리가 찾는 분은 에이미 스키너(신애미)와 베시 무어(모이리사백) 였다.
스키너는 통영에서 거의 20년 동안 활동하며 ‘신 교장’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통영 사람들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기억나는 유명한 선교사이다. 베시 무어는 더욱 특별하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통영의 여러 섬에 마치 민간전승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오늘, 과연 우리는 이 두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사무실 직원에게 이름을 알려주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베시 무어의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직원은 스키너의 묘를 찾아주었다. 그런데 묘지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벽에 묘비가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직원이 건네준 지도를 들고 우리는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름 앞에 섰다.
“Amy Skinner, 9 July 1954, 65 Years.”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여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작은 묘비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으로 쓰다듬었다.그토록 오랫동안 글과 사진으로만 만나왔던 ‘신 교장’의 유골이 바로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한때 통영의 골목과 학교를 누비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만났던 그분이 이제는 이곳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도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호주에서 누구와 통영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 유창했던 통영 사투리로 누구에게 말을 걸었을까.
서상록 목사와 필자에게 에이미 스키너는 특별한 사람이다. 2019년 우리는 함께 『호주선교사 에이미 스키너와 통영』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 책을 쓰면서 우리는 수많은 자료를 찾았고, 그녀가 남긴 흔적을 따라갔다.
그때 필자는 책의 편저자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던 중 힘들 때마다 필자에게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염려스러운 모습이었다. ‘스키너 선교사님, 그 당시 그 어촌 항구에서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선교사님이 살아 계셔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그런데 2026년 8월 22일, 마침내 그녀를 만났다.
작은 묘비 하나가 그녀와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기도를 인도하는 순간, 필자의 마음에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목소리가 떨렸다. 겨우 기도를 마치고 감정을 추스르려 했다. 괜히 쑥스러운 마음에 함께 온 통영 방문자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통영 분 중에는 눈물 흘리는 분이 한 명도 없네요.”
그러나 사람의 눈물이 눈에서만 나오랴. 가슴 속에는 더 깊은 강이 흐른다.
우리는 스키너 선교사의 묘비 앞에 정성스럽게 꽃을 놓았다.
“신애미 선교사님,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아마 그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던 미안함, 오랫동안 느껴왔던 그리움 그리고 이제야 만났다는 안도감.
#한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필자가 조사한 결과 우리가 버우드에서 찾은 알렉산더 묘지가 안진주를 포함한 가족묘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무어의 무덤도 스프링베일 어디엔가 있다는 것도 재차 확인하였다. 아마 무어는 한국인이 또다시 방문해 주기를 바라며 그날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신비한 베일에 싸여있는 그녀의 무덤을 누가 찾아 사랑의 꽃을 드리려는가.
아마 라벤더꽃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