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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9일 수요일

그녀들의 무덤 앞에 꽃을 놓다(I)

 그녀들의 무덤 앞에 꽃을 놓다(I)

-에이미 왓슨(Amy Watson)과 마가렛 알렉산더(Margaret Alexander) 무덤 방문기

양명득


2026822, 우리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하나 있었다. 멜버른의 두 공동묘지에서 네 분의 묘지를 찾는 일이었다. 그중 먼저 찾아간 곳은 멜버른시 버우드 소재 한 공동묘지였다.

(Amy Watson, 사진: 배선희)

주말이라 관리사무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방문객의 모습도 없었다. 넓은 묘지는 고요하다 못해 쓸쓸하고 음습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필자에게는 우리가 찾는 두 여성의 이름과 생몰 연도, 그리고 묘지 번호가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 와 보니 그것만으로는 묘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안내판은 이곳 공동묘지를 종교에 따라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바 성공회, 감리교, 천주교, 장로교 구역 등이 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장로교 구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서로 흩어져 묘비 하나하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버우드에서

오래된 공동묘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묘지와 비석들은 대부분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었다. 어떤 묘비는 깨져 있었고, 어떤 무덤은 잡초만 무성하였다. 묘지 번호도 상당수가 유실되어 보이지 않았다. 꽃이 놓인 무덤 역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는 무덤들. 산자는 죽은 자를 이렇게 잊고 사는가. 그러나 우리가 찾는 여성들은 잊히지도 버려지지도 않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우리가 찾는 분들은 에이미 왓슨(왕 부인)과 마가렛 알렉산더(안진주) 선교사였다. 통영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하고 그리워해 온 호주인들이었다.

왓슨 부인은 로버트 왓슨(Robert Watson, 왕대선) 선교사의 아내로 1913년 통영선교부가 세워지는 데 함께했고, 통영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선교에 힘썼다. 특히 진명학교를 시작한 인물로 김춘수, 박경리, 유치환, 윤이상 등 유명한 예술인을 배출해 내는 교육을 시작하였다.

마가렛 알렉산더 선교사는 그 뒤를 이어 진명학교를 돌보았으며, 통영의 여러 지역과 섬을 오가며 교육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

우리는 책과 글을 통해 그들의 헌신을 배웠고, 오래된 사진을 통해 그들의 얼굴과 활동 모습을 보아 왔다. 그러다가 이제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호주를 방문하여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찾은 것이다.

그 순간은 긴장되고도 경이로웠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도 무덤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서는 혹시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때였다.

여기 있습니다!”

저 멀리서 외침이 들려왔다.

드디어 찾았구나!

누구의 무덤일까.

우리는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은 바로 왓슨 부인의 무덤이었다.

통영에서 왓슨 부부가 살았던 붉은 벽돌의 서양식 이층집, 지금은 통영의 중요한 역사적 공간으로 남아 있는 그 양관의 복원을 위해 애써 온 기념사업회 서상록 회장에게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순간 크게 요동쳤다.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만났다는 감격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이내 모두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동행한 박원순 이사를 비롯한 여성들이 먼저 왓슨 부인의 묘 앞에 섰다. 우리는 말 없이 고개 숙여 묵념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장미꽃을 무덤 앞에 정성스럽게 놓았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왓슨 부인, 반갑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통영의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와 부인을 뵙습니다.

그 옛날 우리 통영을 위해 헌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인이 남겨 주신 사랑과 수고를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오전 중에 이곳에서 또 한 기의 무덤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다시 흩어졌다.

필자는 언덕을 서너 차례 오르내리며 그분의 이름을 불렀다.

안진주 선교사님, 어디 계세요.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 주세요.”

(Margaret Alexander, 사진: 배선희)

묘지 사이의 좁은 길을 걸으며 조금 전에 지나왔던 곳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눈에 알렉산더(Alexander)’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조금 전 그곳을 지날 때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니 비로소 그 성이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다시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비석에는 그 성 이외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묘지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이윽고 흩어져 있던 일행을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이 분명 장로교 구역이고, 우리가 찾는 마가렛 알렉산더 선교사의 묘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조심스레 설명하였다.

 모두가 비석을 바라보았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이 무덤 앞에도 준비해 온 꽃을 정성스럽게 놓았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해 인사를 드렸다.

안진주 선교사님, 정말 이곳에 계신가요?

통영의 수많은 섬을 오가며 애쓰셨지요.

그 거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셨어요.

선교사님이 장바울에게 보내신 편지도 저희가 잘 보았습니다. 그 편지로 선교사님의 마음과 통영을 향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희가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께 꽃 한 송이를 올립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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