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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1일 수요일

영등포산업선교회 선교활동 문서집

 














 차례

인사의 글      정명철

헌정의 글      손은실

발행의 글      손은정

엮은이의 글   양명득

 

1장 산업전도에 관한 총회의 기록

총회 산업전도 위원회 인준 1957

총회 산업전도 위원회 규칙 1958

총회 산업전도 보고 1959

대한예수교장로회 도시산업선교의 기본자세에 대해 1975

도시산업선교 원리 및 지침 1978

총회 성명서 1979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산업선교 활동에 대한 입장 1980


2장 영등포산업선교회 사업보고서 1964-1975


3영등포산업선교 평가회 1973


4장 영등포산업선교회에 관한 글 모음

산업전도의 원칙적인 문제와 방법 / 오철호

산업선교 / 조지송

1970년대 영등포산업선교회 전략 / 인명진

산업선교의 성서적 근거 / 김용복

노동선교의 현황과 전망 / 박진석

영등포산업선교회와 나 / 한명희

노동운동지도자를 위한 노동자학교 / 조남웅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역사와 선교적 과제 / 신승원

영등포산업선교회 협동조합에 대한 에큐 신학적 해석 / 김영철

햇살 후원자 단상 / 임준형

11. 든든한 세끼 식사로 / 김건호

12.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실태와 한계, 그리고 과제

-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 손은정


535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제문

새로운 전진을 위하여 / 조지송

산업선교의 미래적 전망 / 김용복

1980년대 산업선교를 돌아보며 / 이근복

격동하는 역사 속의 산업선교와 나 / 신철영

영등포산업선교회와 나 / 김정근

 

6장 성문밖교회 30,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좌담회

 

740주년 기념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

1. 글을 시작하면서 / 손은하

2. ‘영등포산업선교회 40년사차례 / 편집부

3. 40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순서 / 편집부

4. 아시아교회에서의 한일 도시농촌선교회의 역할 / 인명진

5. 한일도시농촌선교회 성명서

 

850주년 기념 심포지움 발제문

노동자경제공동체에서 지역생활공동체로 / 협동운동사업부

영등포산업선교회 협동사업에 대하여 / 박상신

영등포산업선교회 노숙인 지원사업 1998-2007 / 노동복지부

아시아 도시농어촌선교 디아코니아 훈련원 / 국제연대부

국제연대부 사업에 대한 첨언 / 조정현

 

9장 성명서 및 사명선언문

1. 영등포산업전도

2. 조지송 김경락 목사 연행 사건에 대한 산선의 성명서

3. 영등포산업선교회 안내서

4. 영등포산업선교회 사명 선언문

5. 한국교회 산업선교 25주년 기념대회 선언

6. 대한예수교장로회 도시농어촌선교대회 선언문

7. 2010년 영등포산업선교회 사명 선언

8. 영등포산업선교회, 한국기독교사적 제 8호 지정되다

9. 2015년 영등포산업선교회 57주년 사명선언문

10. 생명의 하나님! 정의와 평화를 이루소서

 

106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제와 논찬문

영등포산업선교회의 힘은 어디에서 오나? / 안재웅

노동자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60, 새롭게 시작될 60년 / 홍윤경

치유와 통로, 더 치열한 연대와 실천을 위하여 / 유흥희

영등포산업선교회 협동조합운동의 평가와 과제 / 배재석

5. 다람쥐회 40가난한 사람들의 따뜻한 은행 / 진형탁

6. 느매기의 활동평가와 과제 / 노느매기 실무자팀

7. 영등포산업선교회 협동조합운동을 바라보며 / 송경용

8. 노숙인 돌봄과 섬김 / 최병국

9. 바보들의 행진에 동행하며 / 최일도

10. 아시아 생명살림, 다시 길을 묻다 / 양명득

11.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선교교육훈련과 선교목회 / 진방주

12. 영등포산업선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 이근복

 

11장 현 영등포산업선교회 실무자 글 모음

1. ‘해고 노동자곁에 머물게 될 줄이야 / 송기훈

2. ‘스스로서기 위해 함께일하다 / 김윤동

3. 경제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금융 '다람쥐회' / 정광숙

4. 외로웠던 삶을 기리며 / 김충호

5. 쉼힐링센터, 노동자의 마음속으로 / 홍윤경

6. 서로 살리고 함께 행복해지는 생협 운동 / 박경순

7. 콘크리트로 가둘 수 없는 새로운 꿈 / 최성은

 

부록 영등포산업선교회 출판 및 관련 도서




발행인의 글

- 새로운 선교의 길을 밝히는 망원경과 현미경

 

손은정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영등포산업선교회의 60년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만나게 해주는 이 문서집이 세상에 나온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책은 영등포산업선교 60주년 기획으로 준비되다가, 2년이 지난 올해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사의 그늘진 현장에서 정의와 평화를 소망하며 달려온 노동자들의 삶과 선교의 역사를 엿보게 하고 그 애통함과 분노와 숨소리를 느끼게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발행하면서 세 가지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 책에 실린 초기 선교보고서와 관련된 것입니다.

초대 총무를 지내신 조지송 목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들은 말입니다. “내 인생의 90%는 산업선교였어!” 이 말씀을 하신 조지송 목사님께서는 1964년부터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셨고, 매월 정기적으로 사업보고서를 쓰셨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그저 관례적으로, 관용적으로 쓰인 단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산업선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몇 명이 왜 방문했고 무슨 교육이 이뤄졌는가가 눈에 보듯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보고서가 1장을 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역하신 지 불과 4년 만에 복음전도에서 산업선교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면서도 보고서는 1장으로 충분했습니다. 목표와 활동이 분명하면 그것을 설명하는데 장황한 말이나 선전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새삼 배웠습니다. 초기 보고서는 독자들에게도 꼭 일독을 권합니다. 오늘도 유효한 복음선교의 첫 마음과 본질이 간명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선교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2대 총무를 지낸 인명진 목사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고 산업선교에 10년간 온전히 집중하셨습니다. 10년간은 여성노동자들과 소그룹모임에 들어가 계시든지, 아니면 유신정권의 표적이 되어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몸으로 사는 시간이었다고 고 이 책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인 목사님과 관련된 보고서 내용이나 쓰신 글을 통해서 유추해보면, 선교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말씀과 함께 우리가 처한 현실, 상황, 조건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매우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선교는 그저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되며, 섬세하고 대담한 판단과 기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워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24:6) 선교전략을 습득하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세 번째, 이 책에서는 역대 실무자들과 노동자 선배들의 사역에 대한 자부심과 증언을 통해 팀 미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이 부르신 일꾼들의 의지, 생각, 도전, 기도, 소망이 모여져 있습니다. 산업선교회의 원동력이 되었던 노동자 선배들의 소그룹. 협동조합의 공동체 운동, 홈리스 운동 등을 읽어가노라면, 새삼 자세가 가다듬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퐁퐁 튀어 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이 책이 새 길을 찾는 누군가에는 망원경이 되고 또 누군가에는 현미경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기획과 글 모음 그리고 편집 일체의 수고를 맡아 감당해주신 양명득 목사님과 타이핑 작업과 교정을 도운 실무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엮은이의 글                                                                                

                                                                                                                                                                                                              양명득 (호주선교동역자)


지난 60여 년 동안 영등포산업선교회에 수많은 노동자, 실무자, 자원봉사자 등이 일하여 왔다. 그동안 이들이 생산한 문서와 자료를 다 모은다면 방대한 양이 될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본 선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1964-1974년의 사업보고서는 가장 소중한 자료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초기 산업선교의 역사적 배경과 동기, 실무자들의 고민, 그리고 앞날의 희망 등이 잘 드러나 있는 원본이다. 이번에 이 원본이 디지털 작업을 거쳐 본 문서집을 통하여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게 되었다.

동시에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사료 정리 작업은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그 중 몇 가지만 제안한다면, 1) 초창기 1958년부터 1963년까지의 사업보고서를 찾아야 하고, 2) 현재 보관 중인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원본들을 탈산 작업하여 복사본을 제작하고, 3) 그 내용들을 디지털화 하고, 4) 영문으로 번역하여 아시아의 단체들과 공유하고, 그리고 5) 그동안 발행한 정기/비정기 간행물들을 모두 찾아 합본으로 엮는 일 등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최소한 두 번에 거쳐 본 선교회의 주요 문서와 사진들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에 기증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념사업회의 홈페이지에서 본 선교회의 일부 자료를 누구나 접할 수 있어 참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기증된 문서의 목록이나 원본이 본 선교회에는 남아있지 않으므로, 그 자료들을 복제하여 본 선교회도 소장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현재 영등포산업선교회의 회관이 재건축되면서 역사전시관 조성이 계획되어 있다. 전시관이 내년에 개관되면 여러 주제의 사료들이 정기적으로 전시되어 후세대들과 기억과 미래의 꿈을 나눌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도 몇 가지 과제가 있는바, 본 선교회와 관련된 1) 노동투쟁 사업장 이야기 모음, 2) 소그룹 교육과 활동 이야기 모음, 3) 영등포 거리 노숙인과 노느매기 이야기 모음 등의 작업이다. ‘조지송 평전은 진작 나왔어야 하지만, 올해 말에는 출판된다고 하니 그 기대가 크다.

본 문서집 출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신 손은정 총무와 팀장들의 협력과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또한 본 선교회의 도서 출판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하신 동연출판사의 김영호 대표와 직원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호주선교사 헨리 데이비스와 그의 조카들

 


The First Australian Missionary in Korea Henry Davies and His Nieces

by John Thompson-Gray / Myong Duk Yang, 2020


차례

 

축하의 글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

축하의 글 셰릴 펜버티 (프레스비테리안 레이디스 칼리지 교장)

격려의 글 로란드 써섹스 (퀸즐랜드대학교 은퇴교수)

발행의 글 송영의 (진주교회 담임목사)

번역의 글 양명득

서문        존 톰슨-그레이

 

1 헨리 데이비스의 생애와 유산

 

1장 한국에 남긴 유산

189046일 전보 전설 도보자와 등반가 헨리, 한국에 가다 어린 시절 마크 듀리가 잘 요약하다 청년 헨리와 그의 이상 종고조 할아버지 헨리는 20살이었다 신문에 싣다 인도 그러나 갑자기 한국 첫 한국 선교 다시 집에 오다

 

2장 한국으로의 약속

빅토리안이 유산을 주장하다 여선교연합회 - ‘어떻게’ - 분열 지정학적 야망과 선교사들 빅토리아장로교회의 국내선교 선교사와 순교자들 뉴 헤브리데스와 한국 헤이스티 요소

 

3장 코필드 그래머 학교의 은사

서론 인도에서 돌아오다 자격 갖춤 가족에 대한 책임 코필드 그래머가 탄생하다 롤리 숍 생명을 위한 전인 교육 주말 선교사 관계되는 역사 헨리의 학교 운영 마케팅과 홍보 재정적 기지 창세기 1출애굽기 - 사도행전

 

2 마가렛과 진 데이비스, 삼촌을 따르다

 

1장 금광에서 조선으로

존 조지 데이비스 - 코롬브라에서의 8- 프레스비테리안 레이디스 칼리지 멜본대학교 - 조선으로 가다

 

21919년까지의 한국선교

한국을 개척하다 진주의 의료선교 세브란스 마가렛의 강연 모트 더 마우드 더 스코티쉬 하우스 브리핑 한국으로 파송되는 진 일차 세계대전 대 부흥운동 부산진의 마가렛

 

3장 폭풍의 계절

마가렛의 딜레마 크로니클 편지 윌리엄 테일러 부모와 함께 진주로 - 진의 편지 - 진의 일기에서 - 1936년 봄 폭풍의 계절

 

4장 벽에 쓴 글씨

비엔나 - 요코하마에서의 죽음 배돈병원을 떠나기 전 진의 보고서 박봉윤 2600마지막 환송 게이조 니본 신문 나환자 요양원 세계 여성 기도의 날 1941년 회고 적국의 외국인 성덕의 거룩한 종

 

5장 마가렛과 진의 마지막 날들

마가렛 데이비스 추모사 플라잉 닥터 진 - 진 데이비스를 추모하며

 

부록: 감사와 참고도서

 


축하의 글

  

James Choi 제임스 최

Australian Ambassador to the Republic of Korea

주한 호주 대사


 호주 첫 선교사 헨리 데이비스와 그의 조카들한국어판이 한국 독자들을 위하여 번역 출판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본 도서는 호주 작가 존 톰슨-그레이가 쓴 책으로 2018년 호주에서 출간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헨리 데이비스, 마가렛 데이비스, 그리고 진 데이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 명의 헌신적이고 용감한 호주인들은 1889년부터 1941년까지 특히 부산과 경남의 교육 및 의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헨리 데이비스는 1889년 한국에 온 첫 호주 선교사였습니다. 마가렛 데이비스는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진주정숙여학교, 부산일신여학교 그리고 하퍼기념여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진 데이비스는 1918년부터 1941년까지 진주 배돈 병원의 의사와 원장으로 일하였습니다.

이런 뜻깊은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신 양명득 박사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양명득 박사는 한국과 호주 관계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바 있습니다.

호주 첫 선교사 헨리 데이비스와 그의 조카들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130년 동안 이어져온 한국과 호주의 긴밀한 인적교류에 대해 더 나은 이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양국의 문화 교류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축하의 글

 

Cheryl Penberthy 셰릴 펜버티

Principal, Presbyterian Ladies’ College

프레스비테리안 레이디스 칼리지 교장

 

호주 멜버른에 있는 프레스비테리안 레이디스 칼리지 교장으로서 우리 학교 졸업생에 관한 글이 담긴 존 톰슨 그레이 씨의 특별한 책을 추천합니다. 그들은 선교사 자매 마가렛 데이비스(문학석사와 교육학 디플로마)와 진 데이비스 박사(의학과 이학사)입니다.

마가렛과 진은 둘 다 1902년부터 당시 다른 개척적인 여성들과 함께 우리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그들의 훌륭한 교육적 바탕으로 실질적인 경력을 쌓았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발전시키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필자가 언급한 우리 학교의 다른 학생들과 교원들은 기독교적인 삶과 증언에 그들의 표지를 남기었습니다.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과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일하였던 이 희생적인 자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매혹적이고 영감적입니다. 또한 진의 호주 원주민 선교와 바누아투 선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명의 여성은 그들의 전문적인 교육적이고 의료적인 기술을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두 명의 여성에 관계된 자료들을 필자가 멜버른의 우리 학교 고문서실에서 찾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마가렛과 진의 훌륭한 학업 성적과 더불어, 마가렛의 음악사랑은 그녀의 삶을 지탱하게 하였고, 진의 프랑스어와 독일어 재능은 그녀의 미래의 사역과 학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호주와 한국 간의 역사적인 관계의 특별한 시각을 제공하는 이 책의 저자 톰슨 그레이 씨와 한국어 번역자께 축하를 드립니다.

 

                                                              발행인의 글

송영의

진주교회 담임목사


데이비스 일가의 한국사랑 중 특히 진주사랑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부산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진주에 들렀습니다. 아쉽게도, 그동안 경남지방 지명에 대한 미숙과 번역상의 착오로 데이비스의 진주 방문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기 마지막 부분을 경남 진주 사람들이 아는 지명으로 정리해 보면, 데이비스 선교사는 부산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진주에 들러 하룻밤 여관에 묵었습니다.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 마지막 날(1889821-1990331)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점심을 완사에서 먹고 수천으로 와서 아주 큰 마을에서 여관을 알아보다.”

 

이 지역 출신으로 지리를 잘 아는 조헌국 장로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점심을 완사(사천시 곤명면 소재)에서 먹고 수천[진주시 문산읍의 옛 이름 소촌(召村)을 잘못 이해]으로 와서 아주 큰 마을(진주)에서 여관을 알아보다.”

 

그 후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진주는 어떤 의미에서 헨리 데이비스의 끝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조카딸들인 마가렛이나 진에게는 첫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가렛이 언어를 배우고 처음 사역 발령을 받은 곳이 진주이고, 진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사역했던 곳이 진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가깝게 느껴져서 그런지, 특히 저희 진주교회에서는 이 책 중간 중간에서 진주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이번에 진주교회에서 중심이 되어 이 책을 발행하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나가노라면, 몇 부분에서 빙그레 웃게 됩니다. 예를 들어, ‘냄새가 코를 찌르는 생선이라는 표현이 두어 번 나오는데, 선교사님들은 그것만은 도저히 먹지 못하겠더라고 표현합니다. 남부지방에서 잘 먹는 젓갈이지요.

그리고 1940년대 중반까지도 호주인들에게 영국시민권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저희 진주교회 역사관에는 설립자인 거열휴(휴 커를) 선교사님의 외손자에게서 기증받은 선교사님 가족의 당시 여권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호주가 아니라 영국 여권이라서 왜 그랬을까 했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목에서 저희 진주교회 교인들은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하게, 이 책에서는 여러 곳에서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부산역에서 이뤄졌던 여러 노예장사들로부터의 젊은 여성들과 아이들 구출 작전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험악했던 우리나라의 그 어렵던 시절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1940920일에 일제에 의해 전국적으로 일제히 천 명이 검거되었는데, 진주에서 배돈병원 소속의 3명이 검거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매일신보1940922일자에 따르면, 신사참배 거부 항쟁자들에 대해서 1940920일 새벽 미명에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일제 검거를 단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신사참배에 대한 여러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일본의 대동아 전쟁 때 배돈병원에서 사용하던 차량도 강제 징발해 갔다고 합니다. 게다가 19382,946명의 한국인들이 일본의 군대에 자원하였고, 그 중 406명이 합격하였으며, 1939, 1940, 1941년 그리고 1942년에는 각각 613, 3,060, 3,208명 그리고 4,077명이 입대하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1939년에는 67만 명의 한국인이 전쟁 산업의 노동자로 일본으로 이주되었다고 합니다. 1942년에 이르러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여성이 간호사와 회사원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제국의 위안부로 매일 한 명이 20명에서 40명 사이의 남성을 성적으로 상대해야 하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소중한 유산들입니다.

이 책에서는 한 일가가 어떻게 여러 선교에 헌신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헨리 데이비스의 동생 존 데이비스 목사는 아내 애니와 함께 1923년과 1924년에 한국으로 와서 1년간 지내고 갔다고 합니다. 진주에서 진과 함께 6개월, 그리고 부산에서 마가렛과 함께 6개월. 그때 한국어와 문화를 충분히 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 익혔던 언어와 문화를 배경으로 다시 1931-33년에 2년간 한국으로 와서 성경공부반을 인도하거나 순회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호주 선교 사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단기 선교 사역들입니다. 그 중 일부가 소중하게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존과 애니 데이비스 목사 부부는 정말 놀랍게 그 시대에 한국을 사랑해서 두 번이나(3) 귀한 단기선교 사역을 온 것입니다. 당시 호주에서 한국으로 오는 데 보통 한 달이나 걸리고, 또 선박 사고가 나서 호주 장로교의 총회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적도 있는데,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몇몇 사례가 있었지만 그동안 호주 선교 연구자들의 연구서에서 단기 선교 사역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파송되었던 선교사 명단에도 그들의 이름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들 중 어떤 단기선교사는 1년 동안 선교사 자녀들(MK) 사역을 했고, 어떤 단기선교사들은 몇 달 동안 외로운 선교사들의 말벗이 되어주며 큰 힘을 불어넣어주고 갔습니다. 지금 선교계에서 MK 사역은 조금 하지만, 선교사들의 영적인 벗이 되어 선교 현장에 따라가 함께 있어주고 말벗이 되며 힘이 되어 줬던 그 놀라운 선교 사역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빛을 보지 못하고 숨겨져 있는 호주 장로교의 한국 단기 선교사들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인간적으로 볼 때는 부끄러워서, 진주교회와 관련된 숨기고 싶은 가슴 아픈 사실이 이 책에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19392월에 당시 경남에서 교인이 가장 많은 교회라고 하면서(1,000명 교인) 저희 진주교회에서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일제 총칼의 강압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무장경찰이 투입된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진주교회 제직회가 결의하고 전국 모든 교회와 경찰서로 선언문을 보냈습니다. (이 책에서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 기독교계 신문에 그 내용 전체를 크게 광고도 냈습니다.) 호주선교회에는 따로 비슷한 내용의 절연 선언문을 보냈습니다. 그 모든 비용은 진주경찰서에서 댔습니다.

충격적이게도, 그것은 진주교회 당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하고 교회당 문에 못을 박고 폐문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하면서, 이제 신사참배에 기꺼이 동의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전국 교회에 장려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일본인이 아닌 외국 세력(당시 호주 선교부)의 물심양면 원조나 지도를 배척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물론 저희 교회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저희가 입수한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서를 통해 그런 치욕스런 과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00937일부터 44일까지 4주간 동안 다니엘과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본받아 자숙하며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엄숙한 기간을 가졌습니다.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고 하나님 앞에 다짐했습니다.

이 책은 데이비스 일가의 한국 선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저희 진주교회에도 너무나 귀중한 많은 역사 자료를 담고 있는 기독교계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진주교회 설립 115주년인 20201022일에 즈음하여 이 책을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읽으시는 많은 분들에게 한 일가를 통한 생생한 선교행전이 뚜렷하게 담겨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큰 비전이 선명하게 새겨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번역자의 글

칭찬으로 완성된 작품

 

양명득

호주선교동역자


그날, 필자는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 위에서 잠깐 그 책을 펼쳤었다. ‘How Great Thine Aunt’ 위트 있는 제목이지만 한국어로는 그 느낌이 어떻게 전달될까. 한장 한장 대충 훑어 내려가는데 갑자기 전율이 왔다. 평소 필자가 관심 가지고 있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필자는 시드니의 바쁜 여정 속에서도 이 책을 단숨에 읽었다.

처음에 존 톰슨-그레이 씨는 나의 이메일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는 내가 번역을 할 만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있었던 것일까. 잊어버리고 있을 쯤 그에게 연락이 왔다. 한국어판을 내자는 흔쾌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그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필자에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헨리 데이비스의 두 명의 조카 이야기인데, 정작 헨리의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톰슨-그레이 씨에게 제안을 하였다. 기왕이면 헨리 데이비스의 이야기도 실어 호주교회의 초창기 한국 선교 주역인 트리오 데이비스로 책을 구성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는 응답하기를 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인데 괜찮은지 되물어 왔다.

그 후 몇 개월이 더 지나고 드디어 원고가 완성되고 번역도 완성되었다. 번역의 작업은 대부분 지루하고 압박의 시간이지만, 이번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톰슨-그레이 씨가 계속하여 나에게 영감을 주고 격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 인생에 그 짧은 기간 동안에 가장 많이 나를 칭찬해준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데이비스 가문의 사람에게 ‘exhibitor in the hearts of men’이라고 불림을 받는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또 한분 감사한 것은 진주교회의 조헌국 장로이시다. 조 장로께서는 호주선교와 진주 관련 수권의 책을 펴낸 교육가이자 역사가이다. 세심하고 깊은 그의 지식은 용어 사용과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높여 주었다.

그동안 호주선교사 관련 도서 몇 권을 어떤 사명감으로 출판하였지만 이제 좀 지치는 느낌이다. 책이 출판될 때 중요한 것은 다음에 또 책을 내려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독자들의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