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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31일 월요일

호주장로교 한국선교 설계자들

 




호주장로교 한국선교 설계자들

(프랭크 페이튼 & 엘리자베스 캠벨 지음)

 

차례

 

격려의 글        로즐린 브라운

발행의 글        신충우

축하의 글        양성대

편역자의 글    양명득

 

1 호주장로교회 총회 해외선교부

 

1장 한국방문기 호주인의 눈으로 보다

1. 한국의 첫 인상

2. 부산에서의 첫 예배

3. 왕길 목사와의 여행

4. 마산포

5. 진주에서

6. 서울

7. 평양

8. 압록강에서 부산으로

9. 한국방문의 성과

 

2장 호주의 한국 선교 정책

3장 동방의 별들 한국방문의 인상

4장 해방 후 한국방문기

 

2 호주장로교회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

 

150년 후에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의 선교기록

서문

서론

멜본 고향에서

청년사역

기금 모금

일반 재정

국내선교

다양한 활동

관계

위대한 모임

성장

한국에서의 선교

호주선교회와 건물들

정치활동

한국교회

전도사역

교육

의료

사회복지

새 사역

현재

여선교연합회 연표

여선교연합회 한국선교사

 

2장 변화의 시대 1940-1950

325주년 보고서

450주년을 축하하며

5장 한국의 재산

660주년을 축하하며

7장 여선교연합회 전진운동

870주년을 축하하며



편역자의 글: ‘시간과 공간이 초월하는 듯한

양명득

(호주선교동역자)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기관 중의 하나로, 1890년 창설되어 올해 13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더 이상 한국에는 선교사를 보내지 않고 있지만, 이 연합회는 창설된 그 다음해부터 한국전쟁 이후 6-70년대까지 한국 땅의 기독교 선교 설계와 더불어 많은 여성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왔다. 그리고 현재는 다문화 사역자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다른 나라에 선교를 실천하고 있다.

최근인 2018-2019년에도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 연례보고서는 총 17개의 지부와 315명의 남녀회원을 보고하고 있다. 이들은 1904년부터 발행한 그 유명한 호주의 조리법들이 담긴 요리책을 여전히 출판하고 있고, 뜨개질 등으로 만든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며 모금을 하고, 그리고 회원들의 회비로 한결같은 복음의 열정으로 국내와 해외 선교를 이어오고 있다.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는 두 번에 거쳐 큰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1941년에는 빅토리아장로교 총회 해외선교부와 통합이 되어 위원회, 재정, 선교사 파송 등을 해외선교부와 함께 나누었다. 1977년에는 호주장로교회가 호주감리교회 그리고 호주회중교회와 연합이 되어 호주연합교회로 탄생하므로, 전체 해외선교부가 호주연합교회 총회로 이관되었다.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는 그 후 장로회 소속 선교기관들과 동역하며 선교사들을 지원하였고,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본 도서에 보고되는 여선교연합회의 특별한 사역이었던 디커니스 제도도 점차로 사라졌고, 국내 선교 거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없어지게 되었다.

호주의 전체 교회에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세계 선교에 대한 사명을 시골의 개개 교회에 깊이 일깨웠고, 그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 왔다. 또한 국내 교회의 부흥은 해외 선교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잘 보여주었다. 빅토리아장로교회 50주년 시 도날드 스튜어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빅토리아장로교회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 중의 하나는 1890년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가 창설되었던 때이다.”

필자는 2019년 부산진교회 대표단을 안내하여 멜본의 빅토리아여선교연합회 회관을 방문하였다. 평생에 몇 번이나 경험해 볼까하는 특별한 공간이었고 만남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을 목도하였다. 평시에 영원무궁이란 말의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던 필자에게 시간과 공간이 초월하는 듯한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호주장로교회 총회의 해외선교부 위원회도 한국선교 설계자들이었다. 특히 실무 책임을 맡았던 프랭크 페이튼, 헨리 매튜, 조지 앤더슨, 에스몬드 뉴, 제임스 스터키 등은 본인이 한국선교사였거나 한국을 수 회 방문한 한국통 지도자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후에는 존 브라운이 호주연합교회 총회 세계선교부 총무로 한국 선교를 이어왔던 것이다.

현재 호주교회의 한국선교는 사실상 그 내용이나 방법이 크게 변화하였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호주교회의 선교 우선은 이제 남태평양이 되었고, 그곳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의 개념이나 이해가 변화하여 선교사를 일방적으로 파송하는 교회가 아닌 한국교회와의 동등한 파트너로 공동의 관심사를 위하여 서로 협력하며, 필요시에만 선교동역자를 주고받는 관계가 된 것이다.

필자는 2000년부터 호주연합교회 뉴사우스웨일스주 총회 선교부의 세계선교부와 다문화 목회부를 책임 맡으면서 줄어드는 세계선교부 기금으로 선교활동이 위축되는 경험을 한 기억이 있다. 당시는 비단 세계선교부 기금뿐만 아니라 전체 주총회의 재정 감소로 큰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었고, 또한 선교의 우선을 해외가 아닌 호주 국내선교에 집중하는 현실이었다. 그때 필자는 국내교회의 부흥은 해외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어느 하나를 희생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대세를 이길 수 없었다. 호주와 한국, 양국의 교회와 선교관계가 장차 또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2020년 여름 장마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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